세종대왕은 세상 밖의 온갖 문제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간결한 해결책을 만든 다음 그것을 집요하게 관철해 내는 지도자였다. 자기문제까지 밖으로 드러내어 평온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지금의 지도자들과는 큰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한반도 모양의 강토를 최종적으로 확정한 지도자가 바로 세종이며, 조선인의 삶의 공간을 확보한 주인공이 또한 세종이며, 조선문물의 기본 골격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결과적으로 조선의 표준을 세운 사람이 바로 세종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조선시대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거의 모든 것의 골격을 세운 사람이 바로 세종대왕인 것이다.
그는 민심을 바로 알아서 공론을 정하는 것이 경영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 여겼으며, 아울러 경영의 기초가 튼튼해지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세종은 신임할 수 있는 스태프를 정하면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줄 알았다.. 그리하여,
첫째, 김종서로 하여금 육진을 설치해 국토를 정비케 했으며, 둘째,정인지, 성삼문, 신숙주와 같은 학자들로 하여금 한글을 창제케 했으며, 셋째,이순지, 장영실 같은 과학자로 하여금 일식과 월식의 이치를 수리로 산출케 하여 세계최초로 일식과 월식을 예고하는 나라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넷째, 박연으로 하여금 경석을 찾게 하여 중국과 다른 순수한 우리의 악기를 만들어 정악의 틀을 세우면서 친히 2백 여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다섯째,최윤덕, 이종무로 하여금 왜적의 소굴인 대마도를 소탕케 했으며, 여섯째, 세종은 세금을 책정하기 위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찬반투표를 물었는데, 이를 위해 전국 각 고을에 경차관을 파견하여 가가호호 방문케 하고, 시행될 세제의 책정방법을 설명한 다음 가부를 묻게 하였다. 그 결과 반대가 더 많은지라 이에 세종은 그 시행을 무기 연기하고 정인지로 하여금 더 합리적인 방법을 연구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도 세금이 정치권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지만 당시에도 세금이 매우 민감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일곱째, 나라의 미풍양속을 보전하기 위해서 [삼강행실도]를 편찬했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책의 한쪽 면은 그림으로 설명토록 했다. 여기에는 [圃隱殞命;포은운명]과 [吉再抗節;길재항절]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포은 정몽주와 길재는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고려의 충신이었으나 세종은 이들의 절개를 높이 찬양하였다고 하니, 코드 인사로 점철되는 현대의 정치풍습에서 보면 그의 포용력과 통치철학은 실로 감동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덟째, 그가 22세의 나이에 즉위했을 때 이미 학문적으로 그와 대화가 될 만한 신하는 두 명 (윤회, 변계량)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느낀 세종은 집현전을 강화하고 학사로 채용을 하면 장기간 근무토록 하여 능력개발과 그의 활용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시대의 최고 Think Tank인 집현전에서의 최장 근무자는 한글의 창제를 극구 반대했던 최만리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는 22년간 근속하였고 한다. 이것은 부하의 능력과 자기를 따르는 성향을 별개로 바라볼 줄 아는 최고의 리더만이 가진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집현전에서는 [사가제도]라고 하는 일종의 안식년제도를 실행하여 능률이 오르지 않는 학사들로 하여금 1년씩 전국을 돌며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울러 당시 동래 관노였던 장영실을 발탁, 주변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벼슬을 주어 그를 등용한 것은 인재활용이 조직운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일가친척이 없이 남의 집에서 기거하는 90세 이상 된 노인들에게는 사철 의복과 음식을 지급하도록 했으며, 애기를 낳은 산모가 있는 가구에는 남편을 사역과 병역에서 6개월간 면제시켜 식솔을 부양케 하는 놀라운 복지제도를 시행했었다.
세종의 통치술은 통치자의 수직적인 권위에 수평적인 경영마인드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형태였다. 그는 준엄한 카리스마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도 온화한 성품과 넓은 포용력으로 민주적 의사결정 구도를 확립해 나갔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의 구현, 찬란한 문화 부흥, 위대한 편찬사업과 훈민정음의 창제, 과학기술의 발전, 법제의 정리 등 그가 일궈낸 많은 업적은 그의 통치술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세종의 리더십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글의 창제를 비롯한 그가 이룬 치적 몇 개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이룬 성과보다도 근본적으로 그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조건과 토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높이 평가 받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창출의 기초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탁월한 CEO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인재를 적절히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집현전에서 인재를 육성했으며, 의견을 달리하는 신하들과 마주 앉아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융합하여 좋은 정책을 만들어냈다. 어전회의에서 반대자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할 줄 알며, 일이 잘못될 수 있는 소지를 사전에 제거해 정책의 에러율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던 CEO. 그리고 조직원인 백성을 가슴으로 사랑하고 포용할 줄 알았던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CEO였다.
<강관수/한국조직관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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