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스크랩] 정긍모(鄭兢謨) 전(前)해군제독(해군중장)

바다산바다 2014. 7. 11. 16:08

정긍모(鄭兢謨) 전(前)해군제독(해군중장)

<예산군지> 제2장 인물 제6절 관환(官宦)

■ 정긍모(鄭兢模)

본 동래(東萊). 해군 중장, 진해통제부 사령관. 해군참모총장 역임. 1914년 예산읍 간양리 출생. 1980년 사망. 태국무공훈장 받음. 묘 대흥면 노동리.

 

 

<예산군지> 제10장 비(碑)와 정려(旌閭)

제1절 신도비(神道碑)

18. 정긍모 신도비 鄭兢謨神道碑

정공의 이름은 긍모요 호는 매당이다. 본관은 동래이며 십대조 영의정을 지내신 태화 호는 양파의 후손이다. 정공은 1914년 충남 예산군 예산읍 간양리에서 정인우씨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재주가 영특하여 나라 걱정에 몰두하여 성실한 인품과 탁월한 기량으로 바다에 뜻을 두어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해양보국의 충정으로 동지들과 더불어 그해 십일월 십일일 해방병단을 창설하니 이가 곧 우리 해군의 기둥이며 모체이다.

1946년 초대 묵호 경비부 사령관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일선기지사령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해군의 귀감으로 지역 방위와 공비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6.25 동란중에는 이동기지 사령관 통제부사령관 등 주요 요직을 맡아 제해권의 확보와 북괴침략군 격퇴에 빛나는 공적을 이룩하였고 1954년 십일월 마침내 제3대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어서는 우리 해군의 전력 강화와 군사교육 훈련에 주력하는 한편 군장비의 쇄신과 함께 함대정비 보강에 착수하여 오늘날 우리 해군의 위용을 갖추는데에 굳은 기반을 닦았다.

1959년 해군 총장으로 예편하여 이듬해인 60년에는 초대 참의원 위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가 1980년에는 해군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이 나라의 해양정책에 크게 공헌하던 중에 1980년 12월 23일 향년 67세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선종하셨다. 정긍모 제독은 이와같이 해양계의 뛰어난 선각자로 우리나라 해군 창설에 선도적인 임무를 다하였고 대한민국 해군의 오늘이 있기까지 남다론 지도역량을 기울여 나라에 이바지함이 지극하였으므로 군인으로서 으뜸의 영예인 대한민국 태극 무공훈장을 비롯하여 을지 충무 화랑 보국 등 빛나는 무훈을 수공하였다.

후인이 기록에서 살피려니와 공은 초지일관 우리 나라 해군에 일생을 바친공인이지마는 그는 가정에서는 원만하고 인자한 가장이었고 사회에서는 근엄하고 정직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올바르게 살며 군인으로서 장성으로서의 경직이나 오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공의 소박하고 거짓없는 인품과 성실하고 강직한 성격은 군에 몸을 담고있는 동안 당신의 맡은바 임무에 충실과 안전을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와 부하 사랑하기를 가족과 같이 하여 세인의 신임과 존경을 한몸에 차지했다. 공이 일생동안 염원하던 남북통일은 아직 완수되지 않았으나 공을 기리고 경모하던 후학과 국민들이 공의 뜻을 이어받아 매진하고 있으니 공은 부디 하늘나라 주님의 품안에 편히 쉬시라.

1930.  4  예산공립보통학교 졸업

1939.  3  해군 군사반 수료

1945.  6  한국해안 경비대 묵호기지 사령관

1947.  8  인천기지 사령관

1948.  5  목포기지 사령관 이동기지 사령관

1950. 11  진해통제부 사령관

1954. 11  제3대 해군참모총장

1960.  7  초대 참의원 당선

1980     국방군사정책자문위원 겸 해군정책 위원장

1961년 신유 6월   일

김동리 지음  심우식 씀

 

 

 

 

 

 

 

 

 

 

 

출처 : 주목 (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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