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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과 일본 엔카의 원조시비(펌)

바다산바다 2008. 3. 24. 23:20
 트롯과 일본 엔카의 원조시비(펌)
 한국의 트롯(trot 속칭 '뽕짝')이 일본의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로 만들어진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엔카가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트롯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한 것인가?*1) 소위 트롯과 엔카의 원조 시비는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엔카(演歌)의 대부, 코가 마사오(古賀政男)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여덟 살 되던 해에 한국(조선)에 건너와 선린상고
(善隣商業高等學校)를 다녔고,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였다. 오늘날 일본 엔카가 소위 말하는 ‘코가멜로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그는 일본 대중가요에 있어서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이다.
 그런데 코가 마사오(古賀政男)가 1931년에 최초의 엔카로 발표한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가 전수린
(全壽麟, 1907~1984)이 1926년에 작곡한 '조용한 장안'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 당시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한 잡지 '신청년(新靑年)'에서 코가 마사오의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가 조선인 작곡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을 표절했다고 시비가 일어났다. 사실, 코가 마사오와 전수린은 절친한 사이이며, 두 사람은 조선과 일본에서 자주 
만났다. 그리고 문제의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는 전수린의 '조용한 장안'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전수린은 왜 1926년에 작곡한 '조용한 장안'을 음반으로 제작해서 발표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의 음반제작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이테크분야였다. 다시 말해서 음반제작은 일본에 가지 않으면 조선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는 전수린을 중심으로 한 조선 작곡가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1926-1936년 사이에 데뷔한 
유명한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7년에 홍난파와 함께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창설하고 '찔레꽃' '직녀성' 등의 대작을 만든 김교성이 1932년 일본 빅터레코드에 
전속되었다. 국민가수 김정구의 친형으로서 배우, 가수, 작곡가를 겸한 천재 작곡가 김용환이 1932년에 폴리돌에 전속되었고, 
일본 무사시노음악학교(武藏野音樂學校)를 졸업한 조선의 서양음악 선구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홍도야 울지 마라' '처녀총각' 
등을 만든 '김준영'이 이 시기에 데뷔했다.
 휘문고보(徽文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바이올린니스트 문호월은 '노들강변' 이난영의 '봄맞이' 남인수의 '천리타향'을 작곡했고, 
일본음악학교(日本音樂學校)를 졸업한 손목인은 고복수의 '타향살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 대작을 작곡했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 수 많은 명곡을 작곡한 한국 최고의 작곡가 박시춘도 이 시기에 데뷔하였다. 
일본 동경음악학교를 졸업, 북한에 억류되어 평양음대 총장을 역임하고 북한의 가극 '피바다'를 작곡한 이면상도 역시 이 시기에 
빅터레코드에 전속, 데뷔했다.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는 이재호는 일본의 고등음악학교를 졸업, 20세에 오케이레코드에 전속되어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명작을 작곡하였다.
 홍난파도 이시기에 데뷔했는데, 안옥경의 '여인의 호소' 이규남의 '유랑의 나그네' 등을 발표했지만, 가곡분야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어 '성불사의 밤' '봉선화' 등의 주옥 같은 명곡을 남겼다.
 아무튼 일본 엔카의 대부 코가 마사오는 조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조선인 작곡가와 교류하고 또 조선의 정취를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이고, 또 전수린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 작곡가들은 일본을 통해서 서양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빅터레코드와 같은 일본 
음반회사를 통해서 데뷔하여 활동하였다.
 이상으로 한국의 트롯과 일본의 엔카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서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오늘날, 엔카와 트롯의 해묵은 원조 시비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대중음악은 국경을 초월해서 불러서 
즐겁고 들어서 좋으면 된다.
*1) 일본의 대중가요, 엔카(演歌)가 초기에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를 기본으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나누키'라는 
말은 '4와 7이 빠진'이라는 뜻의 일본어, 즉 서양 7음계의 '파'와 '시'가 빠진 단음계를 말한다.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는 일본밖에 없는 음계가 아니고, 음양오행(陰陽五行: 木火土金水)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즉, '요나누키(四七拔き)'의 '도∙레∙미∙솔∙라'는 한국의 전통음계의 '중(仲)・임(林)・남(南)・황(黃)・
태(太) 또는 '무(無)・황(黃)・태(太)・중(仲)・임(林)'에 해당한다.
한국 전통음악의 기본음계는 황종(黃鐘:C)・대려(大呂:C#)・태주(太簇:D)・협종(夾鐘:D#)・고선(姑洗:E)・중려(仲呂:F)・유빈
( 賓:F#)・임종(林鐘:G)・이칙(夷則:G#)・남려(南呂:A)・무역(無射:A#)・응종(應鐘:B)의 12율(律)이다.
서양에서는 스코틀랜드가 전통적으로 일본의 '요나누키(四七拔き)' 또는 한국의 ' 중(仲)・(林)・남(南)・황(黃)・태(太) '와 같은 
단음계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요(선율)가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정서에 잘 맞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졸업식 때에 많이 부르는 '석별(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00년대를 전후해서는 
애국가를 이 곡조로 부를 정도로 우리 정서에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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