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실레이야기길 트래킹(김유정 문학관 탐방)

바다산바다 2013. 3. 7. 20:28




2013.3.5(화) 오늘은 절기상 경칩이다. 낮 최고 기온도 12도가 된다니 본격적인 봄의 시작인듯하다.

3.9(토) 공심산우회의 금병산 산행 계획도 있으나 지리적으로 산행 후 김유정 문학관을 둘러볼 시간도 

부족한듯하여 산행을 제외하고 실레 이야기 길을 트래킹 둘러보고오다.

 

금병산 하면 김유정과 뗄수없는 곳이라는것은 이곳 경춘선 역명과 역사의 외양이 말해주듯  독특하다.

금병산에 둘러사인 모습이 마치 움푹한 떡 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레(증리)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며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로서 지금도 점순이 등 소설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금병산 자락의 실레 이야기길은 멀리서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실레 이야기길을 트래킹시작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들려야 할곳이 김유정 생가가 복원된

김유정 문학촌 방문이다. 김유정 기념관에 들려 1930년대 한국소설의 축복이었던 김유정의

일대기와 작품활동에대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안내서가 소개하는 도란도란 열여섯마당

실레 이야기길을 걷는다. 몇가지만 요약하면

 

1.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들병이(들병장수):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김유정 소설에는 19살 들병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인제나 홍천에서 이 산길을 통해 마을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야기가 많이 그려졌다.

관련작품:산골나그네,총각과 맹꽁이,아내,소낙비

 

2.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봄에 산수유가 필 때 나무에 잎이 나기도 전에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꽃이 김유정 소설의 <동백꽃>이다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소설에 묘사돼있다.노랫말<소양강 처녀>와 강원도 아리랑에서 자주 나오는

<동박>이 바로 김유정의 동백꽃이다.

관련작품:동백꽃,산골

 

3.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복만이 소장수 황거풍한테 매매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은 뒤 덕냉이로 도망치던 고갯길이다.

관련작품:가을

 

4.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인제에서 빚잔치 벌이고 도망온 응칠이가 닭 잡아 생으로 뜯어먹으며 송이따던 길

관련 작품:만무방(**만무방:체면도 없이 막된 사람을 이르는 말)

 

5.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김유정이 자주찾아 코다리 찌개로 막걸리를 먹던 주막집이 있던 곳이다

관련작품:산골나그네,총각과 맹꽁이

 

 

 

 

 

 

 

 

 

 

 

 

 

 

김유정(金裕貞:1908.2.12.~1937.3.29)은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2남6녀중 차남(일곱째)로

태어났다. 유아기에 서울 종로로 이사한뒤 일곱살에 어머니를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윈두; 모성결핍으로

 한때 말을 더듬기도 했다고 한다.서울 재동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하였으나

당대 명창 박녹주를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실연과 학교재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귀향한 김유정은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등

농촌게몽활동을 약 2년간 벌이는 가운데 30년대 궁핍한 현실을 희화적으로 체험한다.

29세의 나이로 단명한 김유정이 남긴 30여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까지도

그 재미,그 감동을 잃지않고 있다.

 

김유정의 생가는 김유정의 조카 김영수씨와 마을 주민의 증언,고증을 거쳐 2002년에 복원됐다. 특히 조카

김영수 시가 집의 구조와 크기등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서 직접 평면도가지 그려 복원됐다.

 

'ㅁ'자 구조로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얹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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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생가는 그의 조부가 지었다.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의 배후 인물로 재정 지원을 하였으며

,당시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였다.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자 형태로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얹은 이유는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

 

봉당의 굴뚝

 

생가의 대문간을 들어 오면 바로 왼쪽에 아궁이가 있다.이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사랑방 구들을 데우고

 봉당의 굴뚝으로 연기가 나간다.밥을 짓던 부엌의 굴뚝은 생가 뒤란에 따로 있다.뒤란의 굴뚝 높이 역시

낮게하였는데 밥짓는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을에 끼니를 거르는 집들에 대한 배려였다.

 

봉당의 굴뚝은 부엌이 딸린 안방 굴뚝이 아니라 사랑방 굴뚝이다 사랑방 굴뚝을 봉당으로 낸 이유가 무엇일까?

 

김유정 생가뿐만이니라 오래 보존되어온 종택이나 전통한옥을 살펴보면 사랑방 굴뚝을 안마당에 설치하는 경우가

 종종있다.사랑벙 아궁이에 불을 때면 고래를 따라 열이 이동하는데 개자리(방구들 윗목에 깊이 파놓은 고랑)에서

머물던 더운 기운은 그을음과 티끝을 다 떨어버리고 맑은 연기만 배출한다. 안마당 바닥에 퍼지는 연무는 우리

옛 가옥의 한 정취이기도 하다. 미적 감각도 살리고 키가 작게 만든 이 굴뚝의 연기는 방충기능도 한다.

 

 

 

 

 

 

 

 

 

 

 

 

 

 

 

 

 

 

 

 

 

 

 

 

 

 

 

 

 

 

 

 

"장인님 !  인젠 저 -"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히가 찻으니 성예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는냐고 하면 그대답이 늘

"이자식아 ! 성예구뭐구 미처 자라야지 !"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안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받고 일하기를  삼년하고 꼬박이 일곱달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키는 언제야 자라는겡지 짜증 영문 모른다.

........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김유정이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등 농촌계몽 운동을 벌일 때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유정 역사와 담을 대고 있는 이곳은 강촌레일파크 스테이션이다

최근에 오픈되어 가족단위 연인들이 즐겨 찾을만한 곳이다.약1시간 30분 구간에

2인승(커플용):\25000 4인승(가족용)\35,000

 

  

김유정역에서 바라본 금병산 전경을 파노라마로 조망하다. 절기상 경칩이지만 아직 쌓여있는 눈으로 보아

 눈 산행이 될것 같으니 아이젠등 겨울등산 채비가 필요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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