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설경(HD급 재편집)

바다산바다 2013. 2. 22. 14:41


 
 
(이하 기사는 서울고동문산악회 기사를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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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 참가 산우
동문 산악회 선후배 산우 232명(7회~48회)
 
2. 산행 시간(중간 기준)
만항재(1,327m) 11:00
함백산(1,573m) 12:30(~13:20 점심)
중함백(1,506m) 13:40
은대봉(상함백, 1,442m) 15:05
두문동재(싸리재, 1,279m) 15:30
두문동재 터널 부근 16:00

 
3.  산행 落穗
눈이 비로 바뀐다는 雨水가 바로 내일이지만 아직 白雪이 滿乾坤할 함백산이 눈 세상으로의 특별 초대장을 보냈다는 소식이다.
함백산은 제2 차 南進 대간길의 <피재~화방재>구간 무박 산행시 올랐던 봉우리이다.
산행 날짜(2005년 3월 19일)로는 봄이었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매봉산 눈길에서 <럿셀>을 하는 고생을 하고 눈가루 휘날리던 정상의 칼바람에 뺨이 꽁꽁 얼어붙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날짜와 분위기상 春分의 봄날씨를 믿고 스패츠를 준비하지 않았던 몇몇 산우들이 발이 젖고 얼어와 함백산을 오르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싸리재에서 고한읍으로 내려섰었는데 오늘 北進으로 방향이 바뀐 산길은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解氷期의 산길이 될 듯하다.
양지바른 남녁 비탈길의 눈은 녹아내리고 북쪽 비탈길은 深雪에 발이 푹푹 빠질 것이다.
버스가 영월을 지나 정선군내로 들어서니 따뜻한 봄기운 덕분인지 도로위의 눈이 줄줄 녹아내리고 있어 봄비가 내린 듯하다.
 
무릇 산이름 가운데 <白>字가 들어가는 산은 영험한 기운이 감돌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산이었나. 대간의 봉우리중에서 太白山과 小白山이 그러하고 중함백과 상함백을 아우르는 咸白山은 더욱 그러할 듯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함백산은 푸근한 설경만큼의 여유롭고 부드러운 삶의 이야기만 펼쳐진 곳은 아닐 터이다.
당연히 이 산중에도 불어닥쳤을 냉혹한 현실의 바람에 맞선 사람들의 삶의 사연도 고달팠을 것이다.
대간길 쑤아밭령 부근에서 화전을 일구던 옛사람들의 가쁜 숨소리가 전해지거니와 얼마전까지도 석탄을 너무 많이 캐내 오죽하면 산높이가 낮아졌다고도 하니 탄광 노동자들이 겪었던 삶의 哀歡과 눈물 젖은 빵의 사연이 쌓인 눈의 두께만큼 산중 곳곳에 서려 있을 터이다.
 
자원 개발과 광업소의 사정에 밝으신 형님(17회 한창희)께서 잘 아시겠지만 광산(鑛山), 산판(山坂), 건설(建設)을 소위 3대 <노가다>라 한다는데 이 셋중에서도 제일 위험하고 힘든 것이 광산<노가다>라는 것이다.
 
해방 전후 배고픔을 면하면 행복하던 시절, 年金도 福祉도 의료 혜택도 안전 시설도 부족하고 열악했던 무정한 세월이 흐를 때 꼭 품어 안고 싶은 지폐 몇 장과 목구멍의 석탄 먼지를 씻어줄 비계 몇 점 씹으며 마시는 소주 한 잔에 삶의 愛憎을 실어 지하 막장에서 고된 땀을 흘리던 광부들의 노고로 산의 속살이 알뜰하게 석탄으로 파내어졌고 쌓여진 탄더미와 날리는 탄가루에 熱目魚가 뛰어 놀던 맑은 계곡물도 한동안 검게 물들지 않았던가.
 
산의 겉살도 멀쩡하지 않아 콘크리트 신작로가 생겨 산등성이가 뭉개지고 산마루에 통신 중계 시설이 세워져 푸르던 나무들이 사라졌으니 아쉬운 일이다.
오래전 겨울 어렵사리 여러 번 기차를 바꿔타고 강원도 두메의 탄광촌을 찾았던 어느 소년의 눈에 비친 검은 채탄의 세계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시냇물이 온통 검은 흙탕물이 되어 흘러가던 광경은 낯설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그 때 정암사 계곡물에는 열목어가 헤엄쳐 놀았고 고개 넘어 황지(현재 태백시)의 쇠고기 한 점의 맛은 잊지 못할 천상의 맛이었다.
본격적인 산업화 이후 <主油從炭>이라는 산업에너지 수급 정책과 採炭 사업의 낮은 채산성으로 대부분의 탄광이 斜陽化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광부들이 떠난 高原 마을에 카지노와 골프장, 스키장 같은 위락 시설이 생겨나 성업중이거나 어떤 곳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버스가 탄광 마을에서 카지노 관광 마을로 탈바꿈한 고한읍을 지나 만항재를 향해 414번 지방도로 들어선다.
414번 지방도는 적멸보궁터인 정암사를 들르고 만항재를 거쳐 태백산 아래 화방재까지 갈짓자로 달려가는 아찔하면서도 아름다운 산간 도로이다. 예전 제2 차 대간 산행시 만항재에서 南進 산길을 놓친 산우들이 이 도로를 걸어 화방재로 향했었다.
 
버스의 교통 사정상 만항재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만항재가 강원 남부 산간 지대인 정선, 태백, 영월의 접점이니 이 고개에서 태백산과 경상도 봉화땅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오늘 8km쯤의 산길이 왼쪽 정선과 오른쪽 태백을 가르며 북쪽 삼척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전 강원도 산간의 3개군을 합쳐도 산만 많고 큰 도시가 없었기에 이런 곳을 山多三邑이라 불렀던가.
 
만항재는 남한에서 자동차 도로가 지나는 제일 높은 고개이고 봄가을에는 야생화 천국으로 들어서는 대문이라는데 옛날 고려 유신들이 개성쪽을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삭이던 망향재가 음운 변화로 만항재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먼 옛날에도 피치 못할 사연을 안고 함백산 자락에서 쑤아밭(火畑의 강원도 사투리)을 일구고 부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귀양을 왔는지 도망쳐 왔는지 모르지만 쑤아밭 부쳐 먹는 사람들이 오죽이나 힘들었을까.
고달픈 쑤아밭일에 손발이 갈라지더라도 토실토실한 감자 캐고 옥수수 알알이 여물 때면 떠나온 속세에의 미련을 잠시 잊을 수도 있었겠지만 매서운 바람이 계속 불어오는 한겨울이면 근심도 커졌을 것이다.
그래도 따스한 바람이 눈을 녹이는 계절이 오면 싹트는 한 가닥 삶의 희망을 가슴에 다시 품었고 한겨울 쌓인 눈이 달빛에 젖는 밤이면 山寺의 스님이라도 만났을 터이다.
穀茶 한 잔 얼큰하게 나누어 마시며 서로가 짐짓 김삿갓이 되어 산중의 禪問答을 주고 받았을 것인가.
lt;月白 雪白 天地白/  山深 夜深 客愁深
달빛 희고 눈빛 희니 온 천지가 흰데/ 산 깊고 밤 깊어가니 나그네의 시름도 깊어지네>.
오늘 햇빛 밝고 하늘 밝아 온 천지가 환한 날에 心白이라도 하면 산행의 보람이 클 터이다.
 
눈덮힌 밋밋한 산길이 만항재에서 당초 산행 출발 예정지인 함백산 입구까지 작은 동산을 하나 넘어간다.
 
처음부터 남쪽으로 바로 눈높이에서 묵직한 태백산 줄기가 따라오며 배웅을 해준다. 나무의 눈꽃은 모두 바람에 날리고 사그라졌지만 풍성한 눈밭을 밟는 재미가 쏠쏠한데 능선의 고도가 조금 높아진다면 첩첩으로 달려가는 深山幽谷의 銀빛 세계가 장쾌하게 펼쳐질 것이다.
남한 제6의 고봉 함백산도 역시 산들의 고향이다.
 
정상까지 1.5km 거리에 고도가 250m쯤 높아진다는 함백산 입구에서 태백 선수촌을 내려다보며 비탈을 천천히 올라간다. 산길에 넘쳐나는 交行 인파를 피해 정상까지 통하는 2km쯤의 임도를 걷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산길을 걷는 것이 낫다.
 
드디어 돌무더기 사이로 인파가 북적거리는 함백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비와 함께 예전 여러 기가 있었던 크고 작은 돌탑들이 하나의 의젓한 돌탑으로 다시 세워진 정상에 雨水의 봄바람이 짐짓 성내어 차갑게 짓쳐 오지만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다.
 
정상의 눈높이에서 팔방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요, 가깝고 먼 곳에서 눈 덮인 육중한 산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북위 37도 부근 강원 영서 지역의 산줄기들이 흘러가는 파노라마가 거침 없이 한눈에 시원시원하게 펼쳐지고 魅力的인 겨울산들의 眞面目을 살피는 느낌이 좋다.
 
남쪽으로 태백산 장군봉 줄기가 묵직하게 흘러가고 배추밭 위로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돌아가는 북쪽의 매봉산쯤에서 갈라지는 낙동정맥 산줄기가 장쾌하게 꿈틀거린다. 설사 먼 북쪽이 희뿌연하더라도 대간 줄기인 두타, 청옥, 고적대가 거기쯤에 있슴을 알아볼 만도 한가.
 
높고도 깊은 산들의 고향에서 마음을 잡아 끄는 八方의 산들이 가슴 속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自然과의 交感이 시작되는 것이니 엔돌핀이 솟고 氣가 충만해져 가슴이 후련한 순간이고 흐뭇한 감동에 휩싸이는 짜릿한 순간이다.
시원한 산바람 속에 전해지는 맑고 강렬한 겨울산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 들이며 깊은 숨을 쉬고 바라보이는 모든 것에 그윽한 눈길을 준다.
 
산길이 잔잔한 내리막이 되어 중함백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 함백산의 내리막길은 모두 북사면이어서 눈이 남사면보다 훨씬 풍성하게 쌓여있다. 발이 빠지는 눈길의 감촉이 아주 좋다.
 
산길에 보호수인 주목 군락이 나타난다. 주목이야 당연히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겠지만 산중의 나무에 貴賤이 없을 터이니 다른 나무들도 똑같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저절로 굽이치는 산길에 푸른 천년 朱木과 회색 枯死木이 번갈아 나타나 산길의 韻致가 저절로 그윽하다.
 
천년 주목 아래 터를 잡고 점심 요기를 하는데 오늘 아내들이 따뜻한 음식을 챙겨주지 않았는지 집집마다 불만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새색시 때의 상냥하고 고분고분한 태도가 사라지고 집안 대소사에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식들을 앞세워 은근히 뻣뻣해진 중장년 아내들에 대한 불만이다. 삶에 조금은 지친 남편들이 기댈 곳은 어디인가.
산중에서야 맛나지 않은 음식이 없지만 인생의 찬 바람에 노출되고 산중의 찬 바람이 불어올 때는 누군가의 사랑이 담긴 따끈한 음식이 더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내를 믿어야 하고 술자리의 건배사인 <소취하!(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당취평!(당신에 취하면 평생이 행복하다)>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짧은 오르막을 올라 나무 표지판 하나 서있는 중함백을 지나고 다시 긴 내리막을 걷는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눈 쌓인 산길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산길 곳곳에 고산 지대 특유의 情趣를 담은 그윽한 경치가 펼쳐지고 뒤돌아보면 함백산과 중함백이 더욱 그윽해져 있다.
제1쉼터를 지나자니 산악회의 천년 주목 같으신 원로 형님(7회 정재우)께서 나무에 기대어 잠시 산중의 망중한을 즐기고 계신다. 형님의 발걸음이 정정하시다.
 
산길 앞에 솟은 은대봉만 보고 느릿느릿 나아간다. 길은 잔잔한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경사가 크게 없는 것 같지만 산의 덩치가 커서인지 조금 힘이 들고 가까이 보이는 거리이지만 쉽게 닿을 수가 없는 듯하다.
산길 왼쪽 골짜기 아래에 오늘 아침 스쳐온 정암사가 있다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터이기에 佛身을 모시지 않았다는 절이다. 영축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이 그러한가.
寂滅이라! 죽음 그 자체이고 生滅이 함께 없어져 번뇌의 경계를 떠나는 것인가.
 
지도를 보니 이 산자락 아래로 태백선의 정암 터널이 지난다.
석탄을 싣고 달리던 태백선 열차가 이제 관광객을 실어 나를 터인데 오른쪽 아래 추전역이 있다는 것이다.
제일 높은 간이역이라는 추전역쯤에서 강원도 깊은 산골의 정취와 旅愁를 맛보며 메밀부치기 한 쪽으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오늘 山中不飮의 원칙을 지키며 이 곳까지 이른 것이 장한 느낌이다.
 
드디어 작은 표지석 하나 세워진 은대봉에 닿으니 또 다시 훌륭한 조망이 눈이 시리도록 펼쳐진다. 지나온 함백산의 봉우리들과 대간길을 흐뭇하게 돌아본다. 천혜의 조망터 은대봉에서 산중을 굽어보며 잠시 忙中閑을 맛볼 때 마침 부드러운 봄바람이 온몸을 감싸듯 간지른다.
 
은대봉 바로 아래가 일명 싸릿재로 불리는 두문동재이다.
두문동재 너머로 兩江(한강, 낙동강)의 發源峰이라는 금대봉(1,418m)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급하게 내려빠지는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차량 통행이 불가한 두문동재 옛길이 20분만에 나오고 오늘 산길이 끝나는데 오후 2시경 산길을 마친 준족의 등반대 아우들(31회 남하규, 34회 이동휘 외) 이제나저제나 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터널이 뚫리고 38번 국도가 지나는 두문동재는 정선시 고한읍과 태백시 화전동을 잇고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자동차 고개라는데 대간 산길로 이야기하면 금대봉과 은대봉 사이의 고개이다.
고려 유신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이 골짜기 두문동에 들어와 싸릿문을 닫고 杜門不出 하였기에 두문동재가 되었다는 소리인가.
 
산길의 끝 두문동재에 殘雪을 녹이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데 강원도 두메인 삼척, 정선, 태백, 영월의 산들을 굽어보며 골짜기마다 봉우리마다 깃든 사연을 헤아려 보려 했던 마음도 눈 녹듯이 촉촉이 젖어오는 기분이다.
 
오늘 땀을 거의 흘리지 않은 탓인지 산길의 끝에서 아우들(34회 길웅 외)이 건네주는 맥주의 맛이 최상급은 아니다. 오늘은 소주가 낫겠는가.
두문동재 터널을 통과해 도착한 태백의 뒤풀이 식당에서 여러 잔 연거푸 마시고 귀경 버스에 오르니 차내의 모든 깃수(24회, 25회, 28회)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술상이 기다리고 있다.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를 개선하자는 아우들의 논의가 있었다 하기에 지참한 술병을 만지작거리다가 살짝 동기 산우들에게만 풀어놓는 소심한 마음을 누가 아는지 모르지만 오늘 따라 차내에 좋은 술이 넘쳐나 술인심이 좋다.
오랜만에 대간 산길에 복귀한 형(24회 윤성원)의 바카디 럼주 몇 잔과 붉은 위스키 여러 잔(21회 김병우, 28회 김병화)에 몸과 마음이 홈빡 젖는다.
20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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