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과 용문산계곡을 노닐다

바다산바다 2011. 7. 14. 18:50

  

  약 330 여년전 정약용(丁若鏞)은  游洗劍亭記(세검정(洗劍亭)에서 노닐다.)를 남기다.

 

능선 하나 더 넘으면 세검정이니 북한산 계곡을 노닐던 흔적은 비슷하건만  앞으로 또

 

300 년 후손들은 또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로 족적을 남길가? 

 

25일째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되는 토요일 아침 태풍 6호가 남쪽에서 강력히 밀고 북상하면

 

지루하던 장마기간도 북상 내주 중반 쯤에는 끝이려는가? 

 

마른 천둥소리에 폭우를 예측하고 술병차고 세검정으로 놀러나가려는 이 처럼 

 

이미 그칠줄 모르는 긴 긴 장마기간 중이니 오늘은 큰 우산 들고 북한산 계곡이나 즐겨볼가?

 

 

北漢山(1)

北漢山(2)


龍門山 (1)

龍門山(2)






 



 








(펌)游洗劍亭記 세검정(洗劍亭)에서 노닐다.

丁若鏞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가 막 내릴 때는 사람들이

수레를 적시면서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아니하고, 비가 갠 뒤에는 산골짜기의 물도 이미그 기세가 줄어

든다. 이 때문에 정자는 근교에 있으나, 성 안의 사대부 중에 정자의 뛰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

 
신해년 (1791, 정조 15) 여름에 나는 한혜보(韓徯甫) 등 여러 사람과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뜨거운 열기가 찌는 듯하더니 검은 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이다. 제군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罰酒) 열 병을 한꺼번에 주겠다.” 하니,

모두들, “이를 말인가.” 하였다.
 
이리하여 마부를 재촉하여 나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자 빗방울이 서너 개 떨어졌는데

 크기가 주먹만큼 하였다. 말을 달려 정자의 밑에 이르자 수문(水門) 좌우(左右)의  

산골짜기에서는 이미 물줄기가 암수의 고래[鯨鯢]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고, 옷소매도

  또한 빗방울에 얼룩졌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수목은 이미 미친 듯이 흔들렸고

한기(寒氣)가 뼈에 스며들었다. 이때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 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초석(楚石)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오들오들 떨려 편안치가 못하였다.내가 묻기를, “어떻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고 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런 농담을 하며 즐겼다. 조금 있자니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산골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  

천태만상이었다. 서로를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한참 지나자 심화오(沈華五)가 이 일을 듣고 정자에 뒤쫓아 왔으나, 물은 잔잔해진 뒤였다.

처음에 화오(華五)는 같이 오자고 하였으나 오지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롱하고

 놀려댔다. 그와 함께 술을 한 순배 마시고 돌아왔는데 그때에 홍약여(洪約汝)ㆍ이휘조(李輝祖)ㆍ

윤무구(尹无咎) 등도 함께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겸제 정선 세검정도 洗劍亭圖

1749년 작이니 정약용의 '游洗劍亭記' 보다 약 40년 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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